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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石/고향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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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문학사의 풍경-백석의 만주 유랑과 해방정국 [문학사의 풍경-백석의 만주 유랑과 해방정국] 우리말 소설처럼 되살려낸 ‘고요한 돈’ 번역문학 위상 끌어올린 백석의 역작 백석은 1946년부터 10년 동안 러시아 문학 번역에 매진한다. 1947년 시모노프의 ‘낮과 밤’과 숄로호프의 ‘그들은 조국을 위해 싸웠다’, 1948년 파데예프의 ‘청년 근위대’, 1949년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1’, 1950년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2’, 1954년 ‘체호프 선집1’ 등을 비롯해 10여 권의 러시아 시선집 번역이 그 결과물이다. 이 가운데서도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은 번역문학의 위상을 한 차원 끌어올린 백석의 역작으로 평가된다. 백석은 모두 8부로 구성된 ‘고요한 돈’ 가운데 5부까지를 1, 2권으로 나눠 번역 출간한다. 3권은 한국전쟁 이후 변문식이 번역한 것..
[PDF] 백석 시에 나타난 ‘차이’에 대하여
[PDF] 백석의 일본기행시와 환상
[PDF] 白石 詩 硏究의 留意點과 課題
[매경] 유학생 백석이 찾아갔던 이즈반도 유학생 백석이 찾아갔던 이즈반도에는 금귤이 익어가고 있었다 저녁밥때 비가 들어서바다엔 배와 사람이 흥성하다 참대창에 바다보다 푸른 고기가 께우며 섬돌에 곱조개가 붙는 집의 복도에서는 배창에 고기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즉하니 물기에 누굿이 젖은 왕구새자리에서 저녁상을 받은 가슴앓는 사람은 참치회를 먹지 못하고 눈물겨웠다 어득한 기슭의 행길에 얼굴이 했슥한 처녀가 새벽달같이 아 아즈내인데 병인은 미역냄새 나는 덧문을 닫고 버러지 같이 눟었다 - 전문 1930년 백석은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당선하면서 문단에 등단을 한다. 이것을 계기로 동향 출신의 조선일보 경영자였던 방응모의 장학금을 받아 일본 유학을 떠나게 된다. 백석은 1930년 4월부터 1934년 3월까지 도쿄 아오야마(靑山)학원 영어사범과를 ..
[워싱턴 문인회] 백석 낱말사전 백석 낱말 사전 * 가느슥히 : 가느스름하게. 희미하게 * 가랑가랑한다 : 그렁그렁한다. 물이 거의 찰 듯한 상태 * 가수네 : 가시내. 여자 아이 * 가제 : 방금. 막 * 가즈랑집 : '가즈랑'은 고개 이름. '가즈랑집'은 할머니의 택호를 뜻함 * 가지취 : 취나물의 일종(감각적 어휘)으로 쌉쌀하고 담백한 맛이 난다. * 가펴로운 : 가파른 * 갈매나무 : 키가 2m정도 자라는 낙엽 활엽 교목 * 갈부던 : 갈잎으로 엮어 만든 장신구 * 갑피기 : 이질 증세로 곱똥이 나오는 배앓이 병 * 갓사둔 : 새사돈 * 갓신찬 : 부서진 갓에서 나온, 말총으로 된 질긴 끈의 한 종류 * 갓신창 : 옛날의 소가죽으로 만든 신의 밑창 * 강소천 : 백석의 제자 * 개니빠디 : 개의 이빨 * 개지꽃 : 나팔꽃 * 개..
[교보문고] 분단으로 잃어버린 시인 백석 민족의 정서를 노래하다 백석의 본명은 백기행 훤칠한 외모에 큰 키, 검은 곱슬머리와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의 깔끔한 옷차림. 조선 최고의 모던보이였던 백석의 본명은 백기행. 그는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한국어를 가르치던 오산고등학교를 졸업한 백석은 집안형편상 대학진학이 어려웠다. 하지만 동향인 조선일보 사주 일가의 도움으로 일본 유학을 다녀오고 이후 1935년 조선일보에 시 을 발표하며 등단까지 하게 된다. “백석이 가장 닮고 싶었다는 시인이 김소월입니다. 김소월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한국사람들의 가슴에 담겨있는 정조를 잘 표현하고 있다는 겁니다.” 곽효환 l 시인, 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백석의 문학적 감수성에 불을 지폈던 것은 바로 오산학교 7년 선배 김소..
[시사IN] 백석을 좇는 여정 그 고통과 환희 백석을 좇는 여정 그 고통과 환희시인 백석의 탄생 100주년을 맞은 올해, 그의 삶을 설명해주는 평전이 나왔다.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백석의 행적에 한층 더 밀착했다. 다방면에 능했던 백석의 면모도 두루 보여준다.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2012년 10월 17일 수요일 제265호 1948년 남한에서 마지막으로 백석의 시가 발표됐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중략)/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믈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10년 뒤 북한 조선작가동..